있다. 자주는 아니고 가끔 있다.
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게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궁금해한다. 시작되는 것보다 끝나는 쪽이 훨씬 비슷하다.
방 안의 조건
방 안에서는 조건이 갖춰져 있다.
한 사람은 자기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은 듣는다. 듣는 쪽은 중간에 끊지 않고, 반박하지 않고, 다음에 만났을 때 그 얘기를 먼저 꺼내지도 않는다.
이런 조건이 밖에서는 잘 없다.
그래서 여기서 몇 시간 앉아 있다 보면 이 사람이 나를 되게 잘 이해한다는 느낌이 든다. 그 느낌이 틀린 것도 아니다. 실제로 그 몇 시간 동안은 그렇다.
문제는 그게 방이 만든 조건이라는 걸 양쪽 다 잊는다는 것이다.
밖에서 만나면
밖에서 만나면 그 조건이 없어진다.
여기서는 안 묻던 걸 묻게 된다. 어제 왜 연락이 늦었는지, 누구랑 있었는지. 여기서는 안 하던 계산을 하게 된다.
그리고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잘해줬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. 그게 일이었나 싶은 순간이 오고, 그 질문이 한번 나오면 잘 안 없어진다.
대부분 여기서 끝난다.
오래 가는 경우
드물게 오래 가는 경우도 봤다.
공통점이 하나 있었다. 시작할 때 여기서 만난 사이라는 걸 서로 계속 말하고 갔다는 것. 없던 일로 하지 않았다.
없던 일로 하려는 쪽이 대개 먼저 힘들어졌다. 숨길 게 있으면 그게 계속 커진다.
일하는 쪽에서 보면
일하는 입장에서 이건 손해가 큰 선택이다.
그 손님은 이제 손님이 아니다. 그런데 가게에는 계속 온다. 다른 방에 들어갈 때 그 사람이 어느 방에 있는지 신경 쓰게 된다. 신경 쓰기 시작하면 일이 안 된다.
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안다. 아무도 말은 안 하는데 다 안다.
그래서 이걸 말리는 사람이 많다. 도덕적인 이유로 말리는 게 아니라 일이 흔들리는 걸 봤기 때문이다.
나는
나는 없었다.
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첫해에 그걸 겪은 사람을 옆에서 봐서 그렇다.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삼 개월쯤 옆에서 봤다.
그 뒤로 선이 저절로 생겼다.
옆에서 본 일
첫해에 한 명이 그랬다.
처음엔 아무도 몰랐다. 그런데 그 사람 방에 들어갈 때 표정이 다른 게 몇 주쯤 지나니까 보였다. 그다음엔 그 사람이 안 오는 날에 표정이 또 달랐다.
두 달쯤 뒤에 그 손님이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갔다. 그날 밤에 그 애가 복도에서 울었다.
그 손님은 잘못한 게 없다. 여기는 원래 그런 자리니까. 그런데 그 애 입장에서는 그게 안 됐다.
한 달 뒤에 그만뒀다.
묻는 사람들
이 질문을 하는 사람 중에는 손님 쪽도 있다.
그럴 때는 대답을 짧게 한다. 있다고, 근데 잘 안 된다고. 그러면 대개 더 안 묻는다.
가끔 더 묻는 사람이 있다. 그러면 화제를 돌린다. 그것도 몇 번 해보면 자연스러워진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