텐프로에서 마담으로 십 년을 일하면서 배운 것 중에 제일 늦게 배운 게 이거다. 감정 노동에서 제일 어려운 건 감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거두는 것이다.

이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. 나중에 알았는데, 안 가르쳐준 게 아니라 가르칠 수가 없는 거였다.

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는데

첫 몇 달 동안 배운 것들은 대부분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.

언제 잔을 채우고 언제 안 채우는지. 손님이 자리를 뜨려는 걸 어떻게 미리 아는지. 방이 조용해질 때 화제를 돌려야 하는 때와 그냥 둬야 하는 때. 이런 건 옆에서 보면 배워진다. 반 걸음 뒤에 서 있으면 다 보인다.

배워지지 않는 건 하나였다. 얼마나 가까이 갈 것인가.

너무 멀면 사람은 말을 한다. 너무 가까우면 말을 한다. 이 두 문장은 같아 보이는데 완전히 다르다.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 사이 어딘가에 자리가 있고, 그 자리는 사람마다 다르다.

그러니까 매번 다시 재야 한다.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그날 다르다.

너무 멀었던 때

새끼마담 때 나는 대체로 멀었다.

말을 줄이라고 배웠으니까 줄였고, 실수가 무서우니까 더 줄였다. 방에 들어가서 필요한 것만 하고 나왔다. 아무 사고도 안 났다.

그런데 언니가 어느 날 물었다. 3번 방 그 사람 오늘 어땠냐고.

나는 대답을 못 했다. 그 방에 한 시간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어땠는지를 몰랐다. 잔이 몇 번 비었는지는 아는데, 표정이 어땠는지는 안 봤다.

아무 사고도 안 났다는 건 아무것도 안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.

너무 가까이 갔던 날

몇 년 뒤에는 반대쪽으로 틀렸다.

오래 오던 사람이었다. 늘 같은 자리에 앉고 늘 비슷한 얘기를 했다. 어느 날 표정이 안 좋길래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었다.

그 사람은 잠깐 나를 봤다. 그러고는 웃으면서 아무 일 없다고 했다. 그날 평소보다 일찍 갔고, 한동안 안 왔다.

나는 그게 왜 실수인지 한참 몰랐다. 걱정해서 물은 건데.

여기 오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 일 없는 사람으로 있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 있다. 밖에서는 하루 종일 무슨 일 있느냐는 말을 들으니까. 회사에서도 집에서도. 몇 시간만이라도 그 질문이 없는 데 앉아 있고 싶었던 거였다.

내가 물어보는 순간 그 자리가 사라졌다.

그 사람은 나중에 다시 오긴 했다. 나는 그때 아무것도 안 물었고, 그 사람도 아무 말 안 했다. 그날이 그 사람하고 제일 편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.

거두는 게 더 어려운 이유

감정을 내는 건 어렵지 않다. 사람을 좋아하는 게 특별한 재능도 아니다.

문제는 그다음이다.

한 방에서 마음을 열고, 나와서 닫고, 다음 방에서 다시 연다. 하루에 여러 번. 여는 건 순식간이고 닫는 건 안 그렇다.

닫지 못한 채로 다음 방에 들어가면 그 방 사람이 알아챈다. 아까 뭐 있었냐고 묻지는 않는다. 대신 자기가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낀다. 그럼 그 방도 망친다.

그래서 복도가 중요하다. 문에서 문까지 몇 걸음 안 되는 그 사이에 표정을 되돌려놔야 한다. 언니는 일 초도 안 걸렸다. 나는 몇 년 걸렸고 지금도 완전하진 않다.

이걸 못 하면 몸이 먼저 안다. 하루가 끝나고 나서도 표정이 안 풀리는 날이 늘어난다.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아무 표정도 안 지어진다.

왜 아무도 안 가르쳐줬나

이 거리에는 정답이 없다.

두 걸음이라고 정해줄 수가 없다. 사람마다 다르고, 날마다 다르고, 같은 사람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에 따라 다르다. 가르칠 수 있는 건 "거리라는 게 있다"는 사실 하나뿐이다.

그다음은 각자 틀리면서 익힌다. 나도 그렇게 익혔다. 너무 멀어서 한 번 틀리고, 너무 가까워서 한 번 틀렸다.

지금도 매일 다시 잰다. 오래 했다고 안 틀리는 게 아니다. 다만 틀렸을 때 더 빨리 안다. 예전에는 몇 달 뒤에 알았고, 지금은 그 방에서 나오면서 안다.

그게 이 일에서 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