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016년에 도산대로 텐프로에서 새끼마담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. 익명으로 들어온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다. 손님을 어떻게 다 기억하느냐고.

외우지 않는다. 기억은 장부가 아니라 습관에 남는다. 무엇을 마시는지, 어느 자리에 앉는지, 어떤 얘기를 할 때 목소리가 낮아지는지.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부터 얼굴보다 먼저 떠오른다.

처음엔 외우는 줄 알았다

첫 출근 날 나는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았다. 이름 옆에 한 줄씩 붙어 있었다. 아아 먼저 셋팅. 먼저 말 걸지 않으면 편해한다.

외우라고 했다.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외웠다.

한참 뒤에 알았다. 그 종이는 외울 목록이 아니었다. 이미 누군가 몇 년 동안 기억하고 있던 걸 나 보라고 옮겨 적은 것이었다. 언니한테는 종이가 필요 없었다.

외운 것은 사흘이면 헷갈린다. 남은 것은 안 헷갈린다. 그 차이를 아는 데 몇 년이 걸렸다.

지금 나도 종이를 안 쓴다. 대신 새로 온 애들한테는 써준다. 써주면서 알았다. 적어줄 수 있는 건 껍데기뿐이라는 걸. 아아 먼저 셋팅이라고 적을 수는 있어도, 그 사람이 오늘따라 아아를 안 시킬 것 같은 날은 적을 수가 없다.

이름은 제일 먼저 필요하고 제일 늦게 익는다

첫날에 나는 이름을 하나 틀렸다. 두 사람이 비슷한 자리에 앉아 있었고,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불렀다.

언니는 혼내지 않았다. 대신 이렇게 말했다.

"틀린 이름으로 부르면, 그 사람이 여기서 어떤 사람인지를 틀리게 만드는 거야."

그 말이 오래 남았다. 여기 오는 사람들은 밖에서 뭐라고 불리든 이 안에서는 자기가 고른 이름으로 불리려고 온다.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이 정한 자기 자신을 기억한다는 뜻이었다.

그래서 이름은 제일 늦게 익는다. 사람을 알아야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.

가끔 이름이 안 떠오를 때가 있다. 그럴 때 아는 척하지 않는다. 아는 척하면 틀린다. 틀린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이름을 안 부르고 대화하는 게 낫다. 그것도 몇 번 틀려보고 배운 것이다.

잊는 것도 일이다

기억에 대해 묻는 사람들은 대개 얼마나 잘 기억하느냐를 궁금해한다. 나는 반대쪽이 더 어려웠다.

여기서 들은 것을 여기 밖에서 기억하지 않는 것.

누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, 누구랑 왔는지,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지. 그건 그 방 안에서만 살아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. 문을 닫고 나오면 같이 두고 나와야 한다.

같은 사람이 다음에 왔을 때도 지난번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. 궁금해도 안 묻는다. 그 사람이 다시 꺼내면 그때 이어받는다. 지난번에 그런 얘기 하셨잖아요, 하고 내가 먼저 열면 그 사람은 자기가 여기다 뭘 두고 갔는지를 계속 계산하게 된다. 그러면 다음부터 아무 말도 안 한다.

이걸 못 하는 사람은 오래 못 한다. 처음엔 입이 가벼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. 두고 나오지 못하면 자기가 먼저 무너진다. 하루에 여러 방을 다녀오는데 그걸 다 짊어지면 몇 달을 못 버틴다.

남는 쪽의 기억

그래도 남는 게 있다.

몇 년 만에 온 사람이 있었다. 얼굴을 보고 바로 알았는데 이름이 안 떠올랐다. 그런데 몸이 먼저 움직였다. 자리를 안쪽으로 안내하고 있었다. 그 사람은 늘 벽 쪽에 앉던 사람이었다.

앉고 나서 그 사람이 웃었다. 기억하시네요, 라고 했다.

나는 그때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. 무슨 일을 하는지도, 지난번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. 다만 손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.

기억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. 잘 기억하려고 애쓴 것은 대개 사라지고, 매일 반복한 것만 남는다.

첫날에 유리잔이 물기 자국 하나 없이 줄 맞춰 엎어져 있는 걸 보고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를, 지금은 안다.

화려한 게 아니라 반복이 남는다.